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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생명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수많은 위험에 시달리면서도 헌신하는 사람들. 바로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소방관들이죠~ 지금도 멋지고 정의롭지만, 1990년대 소방관으로 근무하며 화재현장을 지켰던 소방관들은 또 얼마나 멋졌을까요? 
 
희망누리가 만나본 마동욱 마을사진가님은 90년대에 소방서에서 근무를 하셨다고 하는데요. 그 시절 그 이야기를 지금 바로 소환해봅니다! 

1. 소방관의 하루 - 응답하라!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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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사진의 주인공! 어딘지 모를 훈훈한 감성이 가득한 사진 속 소방관이 바로 희망누리가 만나본 마동욱 마을사진가님이신데요. 작가님은 1996년 서울 중부소방서에서 근무하던 시절, 소방관 중에서도 몸이 작고 날렵한 편이어서 44m 고가사다리차를 주로 타셨다고 해요. 높은 빌딩이 많은 도심에서 고가사다리차는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인명구조 차량이죠~
 
그럼, 마동욱 마을사진가님의 소방관 활동 시절 기억에 남는 일화를 들어볼까요?
1997년 어느 겨울, 한남동의 아파트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 전화가 걸려와 마동욱 마을사진가님과 소방관들이 현장으로 출동했는데요. 도착하니 6층 높이의 건물 난간에서 사람들이 구조요청을 하고 있었다고 해요. 신속하게 사다리를 펼치기 위해 자리를 잡았지만, 아파트 아래 펼쳐진 고압선이 문제였는데요. 할 수 없이 아파트 옆 건물에 고가사다리를 펼친 후 소방대원이 먼저 올라가 옆 건물 6층에서 화재현장 쪽으로 사다리를 펼쳤다고 하죠. 위기 속에서도 기지를 발휘한 덕분에 화마에 놀란 사람들이 사다리를 타고 무사히 현장을 빠져나왔다고 해요.
 
하지만 건물과 건물 사이를 사다리 하나에 의지해 이동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요. 마동욱 마을사진가님은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6층이라는 높이 정도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무서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셨다고 해요. 
 
사람들을 구조한 후 아파트로 진입하니 불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는데요. 바닥은 소방호스가 뿜어낸 물로 온통 물바다였다고 해요. 캄캄한 어둠 속을 헤치고 들어가 화마에 질식해 숨진 피해자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마동욱 마을사진가님은 보람과 안타까움을 안고 추운 겨울밤에 동료들과 함께 소방서로 돌아오셨다고 합니다. 방수복은 이미 꽁꽁 얼어있었지만, 추위도 느낄 수 없으셨다고 해요.


2. 소방관의 하루 - 소방관에서 마을사진가로, 제2의 삶을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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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욱 마을사진가님은 당시에 소방서에서 현장사진 찍는 업무를 담당하곤 하셨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스럽게 마을사진가가 되셨다고 해요. 소방관 시절보다는 위험, 구조작업과 조금 떨어져 있는 삶이지만 가끔씩 들려오는 화재 기사에는 지금도 마음이 내려앉곤 하신다고 하죠. 
 
과거에는 소방관으로 마을을 안전을 지키고, 지금은 마을사진가로 마을의 일상을 지키는 삶을 살고 계신 마동욱 작가님. 소방관의 숭고한 노고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으면 한다는 작가님의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희망누리도 열심히 돕겠습니다! 
 
 
상기 내용은 근로복지공단 사보 희망나무 7+8월호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원문을 보고 싶으시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Posted by 희망누리

2017/08/03 13:30 2017/08/03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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